나의 대학 생활을 반추하며

으레 대학 생활 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몇 가지가 있다. 나는 그런 요소들 중 내가 한 것이라곤 공부밖에 없다.
그렇지만 난 다른 방식으로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내 작품’의 개발이다.

남들이 안 쓰는 언어인 델파이, 남들이 굳이 추천하지 않는 윈도우(시스템 프로그래밍 쪽으로 학생이 공부하기에 윈도우는 별로다).
우연이 아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정보올림피아드 공모부문을 몇 번 나갔지만, 거기서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이런 거였다.
“그거 하는 소스 XX에 있는데”
못 해도 좋으니 독자성을 확보하고 싶었다. 그래서 델파이를 선택했다. 사람들이 물으면 “GUI 올리기 편해서”라고 했지만, 내가 델파이를 선택하던 2006년에도 명백히 델파이는 ‘비주류 언어’에 속했다. 하지만 학생이 시간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충분한 노력이 들어가지 못한 프로젝트들은 점점 수렁에 빠져갔다.

대학에 들어와서 한참 헤매다가 나래온 툴 개발을 시작했다. 이번엔 운이 좋게도 사용자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정말 좋은 교수님들이 많았지만, 학부연구생 제의도 모두 거절했다. 리눅스가 낫다는 추천도 당연히 있었고 알고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이번 기회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임이 틀림없었다. 하늘이 내린 완벽한 기회에 철저한 ‘내 작품’이 만들고 싶었다. 작품이 망하는 건 상관없지만, ‘어떤 거 소스 참고했네’, ‘누가 도와줬네’ 라는 말이 나오면 이번 작품은 끝장이었다.

실제로 나래온 툴을 개발하는 과정에선, 최소한 저런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물론 상용 제품은 있었지만, 저렇게 있는 것 다 피해가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 오픈 소스도 안 볼 판에 상용 프로젝트를 베끼겠는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최소한 저 말이 안 나올 정도의 허들은 넘는데 성공했다. 재밌게도 나래온 툴 초기 소스를 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는데, 객체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없는 게 아주 잘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객체를 객체처럼 쓰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 clean code를 읽고 나서다. 나래온 툴이 한 개발 3년차에 들어서서야 나도 다른 OSS의 소스를 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는 이미 독자성 관련해서는 한이 충분히 풀린 상태였다.

나중에 보니까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한지, 구현 면에서 사람마다 스타일이 있는 걸 제외하면 뼈대는 다들 비슷하고, 내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한 사람도 있더라. 다른 소스를 봤다고 해서 그걸 반영한 건 아닌데, 여전히 피땀 흘려 일궈낸 라이선스의 자유란 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열고 싶을 때 열고 닫고 싶을 때 닫는 자유는 소스를 열어 뒀다 해도 굉장한 것이다.

옛날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난 기술보다 사람이 먼저라 생각한다. 기술 자체를 쓰는 능력이 느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다. 필요해서 배우는 거라면 거기에 빠져서 이번 나래온 툴처럼 몇 년이건 바치지만, 그게 아니면 단 한 발자국도 떼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나왔던 게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 면접 과정에서 나왔던 말이었다.
“어떤 걸 해보고 싶어요?”
“사용자가 원하면 뭐든 다 합니다.”
실제로 이 프로젝트가 그렇기도 하다. 커널에 대한 개념도 확립되지 않은 대학 신입생이, ‘SSD 관리 도구’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드라이버 스택까지 파가면서 만든 제품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나래온 툴 프로젝트는 고등학교때까지 쌓였던 한을 열심히 풀어낸 프로젝트가 아닌가 한다. ‘그래,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서 고등학교때까진 오래 끌어도 별 볼일 없었지만, 대학 가면 한 번 보자!’ 하는 마음이 컸다. 물론 나래온 툴은 성과에 비해 cost를 너무 많이 치른, 객관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다. 그러나 ‘내 작품’ 그 자체를 목표로 본다면 이미 훨씬 초과 달성한 듯 하다. 어차피 학생들이 하는 프로젝트란 게 실패하기 마련이란 걸 생각하면, 이번 작품은 ‘실패하는 데 성공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나도 사회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입시라는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아직 사회인이 되지는 않은, ‘대학생’일 때만 할 수 있는 이런 일을 선택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 때문에, 대학 동안 남들이 하는 것과 공통점이라곤 같은 곳에서 공부했다는 점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청춘을 붙태울만한 일이었냐고 하면 응당 그랬다고 말하리라.

ps. 부수적으로 이룬 게 또 하나 있다. 내가 처음 나래온 툴을 만들기 시작할 때 동경하던 사람이 CrystalDiskMark/CrystalDiskInfo를 제작한 hiyohiyo씨다.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그 분에게 찬사를 들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여러 고난을 헤쳐나가면서 ‘실은 난 별 게 아니다’는 사실은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를 생각할 때마다, 빈말이라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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